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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취준생 남자친구였는데 이별당한 이야기

2017. 4. 23.

나는 한때 취준생 남자친구였다. 그래서 차였다..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내 나이 29살 여전히 취준생이었던 나는 3월의 어느날 여자친구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았다. 이유를 말해주진 않았지만, 여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자신이 없어서 한번도 뵙지 못했는데, 집에서 선을 보라고 했다는 얘기로 보아 취준생인 나의 신분때문에, 집안의 압박과 기다리다 치져서 날 보내준듯하다.


최근에 청년실업자가 50만명을 넘었고, 공무원 준비생이나 취포자까지 합치면 3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정말로 심각한 상황인데, 우리 청년세대는 데모나 파업같은걸 많이 봐온 세대가 아니라서 조용히 자기 밥그릇을 지키키 위해서 분투만 하고 있다. 아무튼 그런 취준생 중 1명이 나였고, 여자친구는 공대 석사학위를 따면서 연구원에서 일을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취준생 남자친구라고 여자친구에게 의지하진 않았다. 데이트비용을 전적으로 내가 부담했고, 여친이 자기가 내겠다고 해도 극구 사양하고 남자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은 다해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이별을 당하게 되니까 결국 진짜 사랑은 없고, 현실적 조건에 부딪히게 됨이 씁쓸했다.


그런데 요즘에 자체발광 오피스를 보니까 눈물이 난다. 거기에 도기택이라는 주인공이 있는데, 만년 공무원 준비생이었는데, 이미 회사 대리인 여자친구에게 차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여자친구가 자기만 바라봐주는 남자친구에게 다시 마음이 돌아온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우연히 취준생 남친이 전여친 직장에 생활하게 되는 상황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마치 내일처럼 감정이입이 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전여자친구만을 탓하고 싶진않다. 그녀도 취준생 남자친구 때문에 분명 힘들었을것이다. 아무런 경제적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결혼은 멀게만 느껴지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만약에 이별하게되면, 그녀도 타격이 클테니까..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여친이 다시 사귀자는 말에 도기택이 망설이면서 독백을 하는데, 나의 생각과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었다.

"아직 아무런 준비가 안되었고, 계약직이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나한테 시집오면 고생만 할텐데.. 진정 그녀를 위해서라면 헤어지는게 맞지 않을까..?"



나도 취준생 남자친구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런 마음으로 그녀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술기운에 기대어 '부모님이 선보라고 하면, 나때메 거절하지말고 선봐.. 너만 힘들잖아..' 라고 할 정도로 여자가 보기에 나쁜 남자였다. 물론 여자친구가 기대했던 답변은 알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너만 사랑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고싶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달콤한 말만 그녀에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도 내 미래가 너무나 불확실하고 수 많은 서류와 면접에서 탈락하다보면 자존감이 엄청 떨어지기때문에, 반포기 상태가 된다. 내 스스로도 건사르 제대로 못하는데, 여친을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없다면.. 더 늦기전에 날 떠나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그녀가 진정 행복하는 길이기때문에 모진 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여자들은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취준생 남자친구와 소개팅을 하게 된다면, 위에 나의 사례때문에 처음부터 고정관념을 가지고 다가가지 않았으면한다. 취준생 중에는 못난 사람도 있지만 유독 운이 없는 사람들도 있기마련이다. 그리고 늘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꼭 경제력은 남자가 챙겨야하는 것도 이해가 잘안된다. 나도 지금은 자리를 잡고, 뒤늦게 부모님께 효도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있기때문..

하지만 전여친에게 다시 연락할 생각은 없다. 내가 이미 그녀를 보내줄 마음이 있긴했지만, 내가 가장 힘든순간에도 나만을 탓하며, 취준생인 나의 상태때문에 집안의 압박과 자신도 불안해서 이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나중에 나와 결혼을 해서도 훨씬 더 힘든 일이 많을텐데, 그때 도망가 버릴것만 같아서 싫다. 그냥 서로 딱 그정도 사랑했다고 생각하고 싶다..그리고 좋은 추억으로만 그녀를 기억하길 바랄 따름이다..



다행히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우연히 친구 소개로 직장인 여성을 만나게 되었는데, 여전히 취준생인 나를 전혀 편견없이 바라봐 주고, 놀라울 정도로 나에게 헌신하고 응원해주는 새 여자친구가 되었다. 나이가 차서 취업에 더 난항이지만, 그녀가 먼저 내게 결혼하자고 고백해줬다. 남자로서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새로운 그녀는 남편이 못벌면 아내가 벌면 된다면서, 중요한 것은 서롤 향한 마음이 아니겠냐며, 작은 결혼식이라도 올리자고 한다. 나는 흐를뻔한 눈물을 참았다. 정말 인연이란게 있는 것인지... 취준생 남자들이여 화이팅이다....



..는 희망사항이다.(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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